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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S 키친에서 찾은 지역균형발전의 가능성

이여운 2023. 1.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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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NETFLIX)에서 제공하는 헬'S 키친 시리즈. 미국의 TV 프로그램으로, 고든 램지가 진행하는 리얼리티 쇼다. 여기서 한 참가자가 보여준 행보가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을 관통하고 있다.


헬'S 키친은 어떤 프로그램인가?

헬스 키친이라고 해서 처음엔 건강, 운동 관련인 줄 알았으나 아니다. 지옥을 의미하는 Hell이다. 직역하자면 지옥의 주방. 독설가로 유명한 영국의 스타 셰프 고든 램지가 진행하는 요리 경쟁 프로그램이다. 우승자에게는 호화 레스토랑에서 총괄 셰프로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Las Vegas
Las Vegas I Wikimedia Commons

 

시즌 18, 우승 후보의 자진 탈락

시즌 18에서는 16명의 출연자가 나온다. 출연자들은 모두 각자의 식당을 운영하거나 요식업에 종사 중인 주방장, 요리사다. 14화에 이르기까지 12명이 탈락했고 최종 4인이 남았다. 4명이서 자기들끼리 탈락 후보 1명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 별안간 '모토'라는 이름의 참가자가 스스로를 탈락 후보에 올리겠다고 말한다. 옆에 있던 같은 참가자 브랫은 "예상도 못 했다(Holy fucking curve ball, Motto)"라며 탄식한다. 그는 자기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매일 실력을 증명해왔다고 말한다.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 그가 왜 탈락을 자진했을까? 아래는 그의 말이다.

 

너희 중 하나가 라스베이거스로 가야 해

너희를 두고 포기할 수 없지만

고향의 친구와 가족들 역시 포기할 순 없어

돌아가서 배턴루지의 요리 수준을 높이고 싶어

그러려고 지난 5년 간 노력했고 포기할 수 없어

고향의 많은 사람이 나에게 기대고 있어

그게 내 책임이야

여기서 배운 모든 것,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고향 사람들에게 전부 알려주고 싶어

 

포기란 없다는 그는 고향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여태까지 배운 것들을 배턴루지의 식문화 수준을 끌어올리는 데 쓰고 싶다며, 내버려 두면 아무 변화도 없을 테니 배턴루지야말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라고, 확실한 건 지금 배턴루지로 돌아가면 거길 10배는 더 낫게 만들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진행자이자 셰프 고든 램지는 그런 모토에게 '배턴루지에서 할 일을 마치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거든 내게 연락하라'며 그의 결정을 존중했다.


인사이트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모토의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배턴루지'라는 말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맥락이 아니라 외려 '금의환향'에 가깝다. 우승자가 되면 상금과 함께 라스베이거스(Las Vegas)에서 총괄 셰프로 일하면서 '성공한 셰프'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고, 실제로 우승에 가까워졌음에도 모토는 고향을 택했다. '배턴루지를 끌어올리겠다'는 말과 함께.

 

Baton Rouge
Baton Rouge I Wikimedia Commons

 

말은 제주로, 사람은 서울로?

지방소멸지역불균형은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문제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걸친 역량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다. 다양한 정책들이 나오고는 있다지만, 부작용 없이 지역균형을 이루려면 정책이 아니라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문화가 바뀌고 사람들이 몰리면 구조와 제도의 변화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모토 같은 사람이 대한민국에 얼마나 될까? 사회적 성공을 앞두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 말이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 있는 고등학교나 학원을 다닌 뒤 다시 지방으로 대학을 입학하는 경우? 서울에서 대학을 나오고 지방으로 취업하는 경우? 서울에서 직업적으로 자리를 잡을 쯤 지방으로 돌아오는 경우? 물론 있겠지만 많지 않을 거다. 미국과 대한민국을 단편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다. 기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통찰을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은 '가능성' 측면에서다.


지역균형발전의 핵심

점진적인 지역균형발전의 핵심은 '회귀'다. 현재 지방에는 인프라(infra) 자체가 부족하다. 헬스 키친의 모토는 요리 학교를 나오지 않았다고 알려지는데 그럼에도 좋은 요리 실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조차도 헬스 키친에 나와 정말 많이 배웠다고 말한 사실은, 환경에 따라 배움의 폭이 확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방에서 나고 자라면서도 폭 넓게 배우고 충분히 성공할 수 있겠지만 다들 서울로 가고자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토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라 수십여 명, 수백여 명이 된다면? 배턴루지의 식문화 수준은 한참 올라갈 수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현존하는 수도권 인프라의 장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기회가 닿을 때 지방으로 돌아가 무언가 시작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지방은 자체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책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순간에 지역균형발전을 이룰 수는 없다. 본질은 사람인데, 정책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을 움직이지는 못 한다. 결국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개인의 문제이며 문화의 문제다. 사람이 먼저 움직일 때 정책의 리스크는 작아지며 더 적극적인 정책 추진이 가능해진다. 개인과 사회의 선순환 구조를 통해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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