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끝난 작품은 스포일러에 예민하지만 시간이 지난 뒤에는 그 중요성이 희석되기 때문에 비교적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하다. 타장르 다른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재벌집 막내아들의 결말이 아쉬운 이유를 분석해본다.
재벌집 막내아들 결말
개요
대기업 고졸 직원이 억울한 사고를 당한 뒤 과거로 돌아가 재벌집의 막내아들로 제2의 삶을 살아가는 내용이다. 회빙환(회귀·빙의·환생) 코드라고 한다. 사실상 미래를 알고 있는 셈인 주인공은 신적인 존재로 기능한다. 대리만족과 통쾌함을 주는 이유다.
소설 원작과 드라마
소설 원작에서는 제2의 삶이 전생을 대체한다. 전생을 애도하는 혼자만의 장례식을 치르고 직접 재벌가 회장이 되어 전생의 복수를 이루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제2의 삶이 사실은 꿈이었고, 전생으로 돌아온 뒤 법적 절차를 통해 재벌가를 무너뜨리는 결말이다.
아쉬운 이유
단순한 전개
웹툰작가 주호민은 결말의 아쉬움을 전하며 '작법 구조상 보통 작가들이 그렇게 안 쓴다. 무슨 트럭 운전하는 분들이 킬러도 아니고. 화물연대에서 항의해야 된다. 돈만 주면 덤프트럭 기사들이 사람을 다 쳐버리냐'고 말한 바 있다.
드라마는 '아, 시X 꿈'이라는 인터넷 밈처럼 제2의 삶을 단순하게 처리함으로써 결말에 해석의 여지를 남겼지만, 개인적으로는 꽉 닫힌 결말이 아니더라도 세계관의 논리가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아쉬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타작품과의 비교 분석
스포일러를 포함한다.
영화 I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제작 사정상 영화 스파이더맨의 주인공은 세 차례나 바뀌었다. 토비 맥과이어, 앤드류 가필드, 톰 홀랜드 순으로. 팬들조차 영화사의 사정이겠거니 감안하고 넘겼다. 그런데 마블은 멀티버스라는 개념을 활용해 이들을 한 영화에 모았다. 역대급 흥행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다. 각기 다른 스파이더맨들이 서로 다른 차원에 존재해왔다는 설정은 개연성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요소였다.
웹툰 I 남기한 엘리트 만들기
홍승표 작가가 2008년부터 2011년에 연재하던 네이버 웹툰. 27살의 공시생 남기한은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뒤 좌절하며 '지금 의식 그대로 어릴 때로 돌아가면 엘리트가 될 수 있을 텐데'라 생각하고 잠에 든다. 깨어나보니 정말 16년 전 초등학생으로 돌아온 상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주인공이 공격적 부동산·주식 투자를 한 것과 달리 평범한 집안의 남기한은 그저 공부를 열심히 한다. 웹툰 초반부에서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다룬다. 학교 시험에서 쉽게 만점을 받지만 한편으로 지루함을 느끼기도 한다. 초등학생의 몸으로 의미없는 나날들을 보내야 하기 때문.
충분한 설득력과 재미를 기반으로 어느 순간 세계관이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평행우주의 개념이 나오며 회귀의 개연성을 마련한다. 설정은 이렇다. 세계에는 여러 평행세계가 있고 절대자에 의해 그 중 우수한 세계들이 살아남는다. 남기한이 과거로 회귀할 때 회귀하기 전의 자신은 별개의 미래로 이어지고 이 때 평행세계가 2개 생기는 식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귀를 경험하지만 보통 기억을 잊는다. 주인공과 같은 일부 사람들이 기억을 갖고 회귀하는데 이들을 능력자라고 부른다.
소설 I 전지적독자시점
주인공은 10년 넘게 인기 없는 소설을 읽는 평범한 회사원 김독자다. 주인공이 읽은 멸망 이후의 세계라는 제목의 소설은 지구가 망한 뒤의 내용을 다루는 판타지물이다. 그런데 읽던 소설이 완결되자, 실제로 소설 속 전개가 펼쳐지기 시작한다. 소설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김독자가 소설 속 원래 주인공과 함께 이야기를 끌어가는 내용이다.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네이버 웹툰도 연재 중이다.
누군가에겐 좋은 결말이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 설정에 더 창의적인 세계관이 포함됐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은 언제나 즐겁다.
'문화 > Conten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먹히는 아재 개그를 하는 방법, 코미디의 3요소 (8) | 2023.03.15 |
---|---|
머니볼(2011)과 경제학의 제국주의 (1) | 2023.03.11 |
시리즈 I 월스트리트에 한 방을: 게임스톱 사가 (3) | 2023.02.10 |
상상력을 자극하는 밴드 오월오일(五月五日) (2) | 2023.02.02 |
사인필드(1989), 다시 보는 미국 시트콤 (1) | 2023.01.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