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Investment

시장에 지지 않는 싸움을 하자

What is McGuffin? 자세히보기

경제/경제 이슈와 상식

빌라왕으로 보는 전세사기 메커니즘

이여운 2022. 12. 28. 00:05
반응형

1,139채의 집을 가진 한 40대 남성이 죽었고 '빌라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누구이며 어떻게 그 많은 빌라를 보유하게 됐는지 살펴보고, 전세사기의 메커니즘을 분석한다.

 


빌라왕이 누구인가?

1980년 출생의 외동아들 김 씨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20대를 보내다, 부모가 대출 받아 세운 빌라를 1년 만에 날려 먹는다. 사채를 잘못 썼다고 한다. 빌라는 가족의 전 재산이었다. 실패를 만회하고자 서울로 상경한다.

 

부동산 중개소에서 중개보조원으로 일하기 시작한다. 지인들의 말에 따르면 김 씨는 '답답한 사람'이었다. 대학 진학도 포기해, 집안 재산도 날렸지, 상경해서는 돈도 얼마 못 벌고 상사한테 혼나기만 한다.

 

중개보조원 생활을 이어가던 중 상가 매매가 전보다 못하자 빌라 전세시장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빌라 40채를 한 부동산업자에게 선물 받고 좋아했는데, 사실 선물이 아니라 전세사기의 명의대여자로 이용된 것이었다. 이른바 '바지 집주인'이다. 빌라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빌라왕 추적기:1139채를 가진 남자 I 2022.12.20. I 한국일보

 

머리부터 발 끝까지 명품... 빌라왕 정체는 '검증된 바지 집주인'

10월 12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모텔방에서 40대 중년 남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사망한 김모(42)씨는 두 달 넘게 이 모텔에 머물던 장기투숙객이었다. 당시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사인은 '상세

www.hankookilbo.com


어떻게 빌라왕이 됐는가?

건축주는 건물을 짓고 파는 게 목적이다. 상대방이 빚을 지든, 빚 갚을 능력이 없든 알 바가 아니다. 높은 가격에 건물을 파는 것만이 관심사다. 누가 갚을 능력도 안되는데 빚을 지면서까지 비싸게 건물을 사겠다고 하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환영이다. 상식적으로 그렇게 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중간 과정을 복잡하게 만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 된다. 빌라왕은 경제적 능력 없이 빚을 지면서 수많은 빌라를 매입한 셈이다.

전세사기의 메커니즘

아파트와 달리 신축 빌라는 시세가 없다. 빌라의 경우 잘 안 팔리는데, 매매 수요는 없어도 전세 수요는 있다. 깨끗하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 대출이나 보증보험도 가능하니 진입 장벽이 낮다. 매매가보다 높은 전세가에도 쉽게 들어오게 된다. 이 아이러니를 깡통전세라고 한다. 세입자는 보증금이야 비싸봤자 돌려받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분양대행업자, 즉 브로커가 중간 과정에 개입하며 문제가 생긴다. 건축주는 빌라를 1억 원에 팔고 싶다. 브로커가 접근해 빌라를 1억 5천만 원에 팔아줄테니 5천만 원은 자신에게 수수료로 달라고 한다. 브로커는 1억 5천만 원의 전세를 내놓고, 이 깡통전세에 세입자가 들어온다. 보증금을 반환할 의무는 임대인인 집주인에게 있다. 브로커는 명의대여자를 모집해 리베이트(rebate) 명목의 뒷돈을 준 후 집을 넘긴다. 이때 명의대여자에는 주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가 대상이 된다. 집주인이 건축주에서 명의대여자로 바뀐다. 매매가에 달하는 전세보증금은 이미 건축주와 브로커, 명의대여자가 나눠 먹은 상태. 보증금 반환 의무는 명의대여자에게 있으나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은 없다. 세입자는 보증금 못 돌려받는다. 보증보험이나 법적 절차를 밟은 후 경매를 통한다 해도, 애초에 비정상적으로 높게 설정된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앞선 과정에서 분양업자가 하는 일을 '동시진행' 또는 '무자본 갭투자'라고 한다. 동시진행이란, 전세가를 매매가와 동일하게 맞춘 뒤에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분양대금을 치르는 매매기법이다. 자본금 없이 세입자의 보증금으로 매매한다는 점, 이후 시세차익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무자본 갭투자로 볼 수도 있다. 갭투자는 원래 시세차익을 목적으로 매매가와 전세가의 차액(gap)이 적은 주택을 골라, 세입자에게 받은 보증금에 자본금을 더해 주택을 매입하는 방식이다. 사실상 무자본 갭투자의 정확한 명칭은 무갭투자가 맞겠다.

 

빌라왕은 '전문 명의대여자'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빌라를 보유하게 됐다. 부동산 시장의 과열은 리베이트에 더해 시세차익까지 그에게 안겨줬고, 이후 직접 빌라 매입에도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무자본 갭투자를 통해서다.


잘 모르고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다. 세입자들만 피해자가 아니다. 그간 암암리에 전세사기를 통해 재미본 이들도 피해자다. 빌라왕의 여파가 크면 클수록 법과 제도가 꼼꼼하게 정비될 테고, 더이상 재미보기가 힘들 테니 말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