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짜리 영상 20개를 올리고 구독자 40만을 찍은 유튜브 채널이 있다. 사우스 코리안 파크(South Korean Park)다. 영상의 주제와 전개, 극과 극으로 갈리는 대중의 반응까지. 상당히 흥미롭다. 단순한 블랙 코미디로 보기는 어렵고, 뒤집힌 블랙 코미디 정도로 소개할 수 있겠다. 사우스 코리안 파크가 어떻게 그만한 인기를 끌게 된 건지 한번 분석해보자.
모티브
채널명에서 알 수 있듯, 미국의 성인용 애니메이션 시리즈인 사우스 파크(South Park)에서 착안한 걸로 본다. 줄여서 사팤이라고도 부른다. 1990년대에 방영을 시작한 사우스 파크는 높은 수위의 블랙 코미디로 유명하다. 한데 블랙 코미디의 특성상 당대의 사회적 사건에 대한 이해도가 낮거나 언어 장벽이 있으면 즐기기 어렵다. 누군가 사우스 파크의 색깔과 컨셉을 가져와 한국판으로 바꿔놓은 게 사우스 코리안 파크라고 보면 되겠다. 한국판 제작자에 대해 아직 알려진 바는 없다. 아래는 사팤의 극장판.
블랙 코미디란?
우선 블랙 코미디(Black Comedy)가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야겠다. 블랙 코미디는 쉽게 말해 역설적인 상황에서 오는 씁쓸한 웃음이다. 웃기지만 마냥 웃을 수 없거나, 웃으면 안 되는데 웃긴 것들. 민감하고 불편한 주제가 주로 등장한다. 인간 본성이나 사회, 정치, 종교, 성과 같은. 사우스 코리안 파크의 영상 제목들이 대개 그런 식이다. 이태원, 장애인, 여경과 같이 흔하지 않은 소재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다.
배경 및 주제 분석
배경
초등학교가 배경이고 주요 등장인물은 셋이다. 뾰족 머리인 서준, 세모턱인 도윤, 그리고 팔다리가 없는 혁이.
과한 배려는 독
장애인 편에서는 서준이 자신의 팔다리가 없는 친구 혁이를 도윤에게 소개시킨다. 도윤은 불쌍하다며 위로하지만, 정작 서준과 혁이는 신경도 안 쓰고 농담하기 바쁘다. 장애에 관해 농담하지 말라는 도윤에게 서준은 장애인용 농담이 따로 있냐고 되묻는다. 혁이도 그에 동참해 유쾌한 농담을 던진다. 썸네일만 봐서는 혁이가 소수자 같은데 영상을 다 보고 나면 도윤이가 소수자로 보인다. 배려의 기준은 본인이 아니라 상대가 되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풍자
이른바 PC(Political Correctness)라고도 불리는 정치적 올바름은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섞인 표현을 쓰지 말자는 개념이다. 남자는 어때야 하느니, 여자는 어때야 하느니 같은 말들을 하지 말라는 것. 이순신 편에서 이 개념이 드러난다. 인어공주 실사판에 흑인 배우가 섭외된 것처럼, 해당 영상에서는 이순신이 흑인으로 나온다. 흑인도 시민권이 있다면 우리나라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선생의 편견 없는 말에 혁이가 고증 오류라고 조용히 읊조리는 게 포인트. 개그적 과장을 통해 PC를 비꼬고 있다. 편견을 없애는 건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없애면 코미디가 된다. 전학생 편에서도 비슷한 맥락을 다룬다.
멀쩡한 사람 바보 만들기
사우스 코리안 파크의 영상들은 주로 도윤이의 과한 배려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서준이가 반박하는 내용으로 구성된다. 도윤이의 논리는 빈약한 반면 서준이는 시원하게 말하기에 대중이 사회풍자에 대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듯.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강하게 비판하기도 한다. 배려, 정치적 올바름 같은 신념이나 가치는 약자와 소수자를 위한 건데, 이걸 희화화하면서 혐오를 조장한다는 논리.
제작자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영상 자체가 꽤나 모순적으로 짜여 있다. 같은 영상인데도 댓글의 반응이 다른 걸 보면. 신작 편에서 특히 역설이 두드러진다. 부모의 사생활을 몰래 촬영해 판매하는 지웅이를 선생이 혼내며 영상 본 사람들 다 불러 오라고 한다. 막상 불렀더니 경찰이고 아버지고 할 거 없이 수많은 사람이 모였고 분위기는 완전히 다수로 기울어진다. 선생만 바보된 꼴. 댓글도 재밌다. 선생을 희화화한 게 속 시원하다는 댓글도 있는 반면, 불법촬영물을 소비하는 건 엄연한 범죄고 영상도 그걸 풍자하고 있는 거라며 역으로 꼬집는 댓글도 있다. 결국 해석하기 나름인 것.
성의 있는 비난
블랙 코미디도 결국은 코미디. 양파 편은 풍자에 대한 쾌감보다 그냥 웃긴다. 한 양파에는 칭찬을 하고 다른 양파에는 비난만 하는 실험인데, 성의 있는 칭찬과 무분별한 비난이 대비된다. 줄곧 양파에게 칭찬을 하던 아이가 비난하는 아이에게 성의 있게 좀 하라고 하자 성의를 담은 비난을 하는데. 내가 양파였으면 울었다.
왜 뒤집힌 블랙 코미디인가?
답이 정해진 블랙 코미디
뒤집힌 블랙 코미디라는 말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붙인 것. 공대생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의 作 '표백'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예전에는 민주화나 산업화 같이 큰 흐름이 있었고 청년 세대는 이를 쫓았는데, 지금의 안정된 사회에서는 청년들이 쫓을 게 없다는. 독재나 노예제는 비교적 옳고 그름이 명확하다. 정치 부패도 마찬가지. 이처럼 답이 명확해보이는 문제에서의 블랙 코미디는 단순하다.
균형 맞추기의 어려움
반면 지금은 어떨까. 사우스 코리안 파크가 다뤘던 배려를 예로 들자면? 옳고 그름이 명확하지 않고 기준이 애매하다. 약자와 소수자를 어디까지 배려해야 하는가? 지나친 배려는 외려 상처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현대사회의 과제는 그 균형을 맞추는 것이라고 본다.
사우스 코리안 파크는 정해진 답을 기준으로 하는 풍자가 아니라, 적정 수준 근처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는 풍자에 가깝다. 종전의 블랙 코미디와는 성격이 다르다. 이 점 때문에 의견이 갈리는 거라고 본다. 언뜻 보기에는 한쪽에 치우쳐진 시원하고 자극적인 풍자처럼 보이니 큰 인기를 끄는 듯하다. 하나 우려되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풍자와 반어를 사용하기에 어린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 미국의 사우스 파크는 미성년자 시청 제한이 걸려 있지만 한국의 사우스 코리안 파크는 영상 하나를 제외하고 그런 게 없다. 자칫 풍자와 반어가 곡해되면 아이들이 그릇된 편견을 갖게 될 수도.
창작물은 역시 꿈보다 해몽. 어쨌거나 유머 감각 하나만은 확실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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