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는 2022년 9월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발표에서 시작됐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다는 나비효과처럼, 어떻게 도지사의 발표가 채권과 부동산PF 시장에 혼란을 가져오게 됐는지 살펴본다.
레고랜드 사태
사업 개요
강원도가 영국의 테마파크 기업 멀린 엔터테인먼트와 춘천시에 레고 테마 놀이공원을 건설하기로 하고, 2012년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를 설립했다. 시행사 설립 10년 뒤인 2022년 5월에 레고랜드가 개장했다. 현재는 동절기 임시 휴장에 들어가 3월 23일까지 이용할 수 없다.
땅 사고 놀이공원을 지으면 끝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맞는 말이지만, 많은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해진다.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배경과 파급 효과를 이해하려면 먼저 부동산 개발 사업 구조를 알아야 한다.
부동산 개발과 PF
부동산 개발 사업에서는 주로 PF(Project Financing) 대출이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돈을 빌리려면, 빌린 돈을 갚을 수 있다고 증명해야 한다. 대개 신용이나 담보를 이용한다. 내가 무슨 직업을 갖고 있고 1년에 얼마를 버니 대출을 갚을 수 있다거나, 대출을 못 갚게 되면 집을 팔아서라도 갚겠다는 식이다.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신용이나 물적담보가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의 수익성에 기초한다. 이 프로젝트를 해서 얼마를 벌 수 있으니 그걸로 갚겠다는 거다. 부동산 개발에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만큼 상당한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나 부동산 상승기에는 추가적인 이익도 본다. 빌릴 때의 땅값보다 갚을 때의 땅값이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만큼 부동산 하락기에는 취약하다.
배경과 현황
시행사의 대출
시행사는 부지 매입부터 건설에 이르기까지 부동산 개발 사업의 전 과정을 담당하는 회사다. 레고랜드의 시행사는 강원도와 멀린이 함께 설립한 강원중도개발공사(GJC)다. PF 사업 주체인 GJC는 공사비 충당을 위해 아이원제일차라는 회사를 세우고 2050억원을 끌어쓴다.
2050억원은 어떻게 모았나?
아이원제일차는 특수목적법인(SPC)으로, 레고랜드 같은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자금 조달·자산 매각 역할을 담당하는 페이퍼컴퍼니다. 쉽게 말해 돈을 끌어다 오는 서류상 회사다. 금융시장에서는 돈을 갚을 의무도 대출채권이라는 이름으로 자산이 된다. 아이원제일차는 이 대출채권을 담보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다수의 증권사로부터 돈을 모았다. GJC가 미래에 갚을 돈을 담보로 돈을 빌렸단 소리다. ABCP를 사간 기업들은 또다시 이를 기반으로 한 상품을 투자자들에게 팔았다. 돈이 투자자에서 증권사로, 증권사에서 아이원제일차로, 아이원제일차에서 GJC로 옮겨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만일 GJC가 돈을 못 갚는 경우 강원도가 대신 갚겠다고 보증을 선 게 사태의 발단이다.
강원도의 채무불이행 선언
레고랜드 ABCP 만기를 하루 앞두고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GJC에 대한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기업회생은 파산 위험에 놓인 기업이 법의 도움을 받아 회생을 도모하는 제도다. 회생절차에 들어가면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이 커진다. GJC가 빚을 못 갚는 상황이 되니 강원도가 그 빚을 갚아야 하는데 돌연 GJC에 대한 회생신청을 한 것이다.
결국 강원도는 만기까지 빚을 갚지 못 했고 2050억원의 ABCP는 사실상 부도 처리가 됐다. 지자체의 보증은 공신력이 크다. 지방정부가 돈을 못 갚을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기에 그 여파는 상당했다.
엎친 데 덮친 격
안그래도 높은 금리로 투자 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 지자체가 보증한 어음도 부도가 나는 판국이라니. 자금시장이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자금을 조달하려고 기업이 발행한 어음이나 채권을 투자자들이 사지 않는다. 돈을 못 돌려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태를 인지한 정부가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투자자들이 사지 않는 어음, 채권을 정부가 사들였다. 정부 대책으로 시장 공포가 다소 가라앉았으나 자금시장 경색 가능성이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은 게 현재의 상황이다.
나비는 자신의 날갯짓이 태풍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할 정도의 지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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